저는 미국의 대도시와 한국의 대도시 모두 꽤 오래 살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양쪽 모두를 경험해 본 바로는 의외로 미국 집에서 많은 벌레 또는 절지동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뉴욕에서는 거대한 바퀴벌레가, 뉴저지에서는 그리마가 자주 보이더군요. 두 지역 모두 house beetles라 불리는 딱정벌레와 silverfish라고 하는 좀벌레도 흔히 나타나곤 했습니다. 개미도 때때로 음식을 뒤덮었고 파리도 확실히 한국보다는 많이 보였습니다.
특히 바퀴벌레, 좀벌레, 그리마, 파리는 한국에 자생하는 종보다 크기가 훨씬 더 컸습니다. 농담으로 바퀴벌레는 쥐, 파리는 새라고도 했을 정도이죠. 바퀴벌레는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대했고 파리는 윙 하는 날개소리가 호박벌을 능가했습니다. 이사를 많이 다녀서 여러 집에서 살아봤지만 그런 벌레가 나오지 않는 집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뉴저지에서는 그중 가장 저를 힘들게 했던 대형 바퀴벌레가 보이지 않아서 훨씬 살만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얘기한 생물들은 얼핏 듣기엔 모두 해충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닌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마와 지네입니다.
이 생물들은 일단 곤충이 아니라 절지동물에 속합니다. 곤충 역시 절지동물에 속하지만 곤충은 절지동물의 하위 개념이죠. 그리마와 지네처럼 지네강에 속하는 생물들은 절지동물이지만 곤충에는 속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다리가 달린 이들은 무서운 생김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리마나 지네는 바퀴벌레, 모기, 심지어 침대에 기생하는 진드기 (빈대, bedbug)까지 잡아먹어 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다른 해충들처럼 사람의 음식에 달려들거나(달콤한 과육이나 고기는 먹을 수도 있지만) 나무를 갉아먹는 피해를 입히지도 않습니다.
이 생물들이 집에 존재한다는 것은 집에 이들의 먹거리, 즉 해충이 많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제거하는 것은 곧 해충의 수가 급증할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우선 지네와 그리마가 집에 안 나타나게 하려면 해충들을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해충만 없앤다면 먹을 것이 없어서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축축한 곳을 좋아하니 화장실이나 부엌에 틈을 막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육식성이기 때문에 가끔 사람이 자고 있을 때 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지네가 사람을 공격했다기 보다는 사람의 살을 먹을 수 있는 고기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네를 잡으려면 항아리에 닭고기를 넣어두면 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지네는 고기를 좋아합니다. 지네에게는 곤충이 가장 좋은 먹이지만 워낙 식성이 좋다 보니 고기가 눈앞에 있으면 먹기도 합니다.
그리마의 경우 독이 약해서 거의 아프지 않지만 지네는 물리면 끔찍할 정도로 아프니 주의해야 합니다. 지네의 독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진 않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파서 견디기 힘들 정도면 병원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