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위기 피로감(crisis fatigue)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생소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것은 현재 세계인들이 겪고 있는 증세입니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돌쇠"라는 가상의 인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처음에 코로나19가 등장하여 인류를 위협하면서 돌쇠는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내 살아남기 위해 마음을 강하게 먹고, 외출을 삼가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려 보기로 합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이번 바이러스도 당연히 곧 소멸될 거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정부의 지침을 따르며 마스크도 열심히 쓰고 다닙니다. 나라 전체가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분위기가 되면서 자신도 그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때로는 들뜨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금까지의 다른 전염병과는 달리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치료제나 백신에 대한 희망감도 점점 옅어지게 됩니다.
지금껏 돌쇠의 몸에서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한 호르몬이 펑펑 나와줬지만 아쉽게도 인간의 몸은 그런 상태를 그리 오래 지속할 수는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어느 순간 돌쇠는 정신이 심하게 지치는 것을 느끼며 기분 상태가 급강하하는 것을 느낍니다.
말하자면 "환멸의 단계"가 온 것입니다. 함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똘똘 뭉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흐트러지기 시작합니다. 돌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단체로 정신적인 피로감을 느끼면서 예전에 비해 조용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초조함, 불만, 분노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코로나19 사태의 초기 단계에서 너무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써버린 바람에 돌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무력한 상태가 되어갑니다. 스트레스가 1년 가까이 쌓이게 되면서 스트레스 만성화가 되고 결국 "위기 피로감"이란 단계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위기 피로감이 시작되면 불안감이 높아지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더 심각해지면 포기 단계가 찾아옵니다. 앞으로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듯 자포자기 상태가 되는 것이죠. 실제로 최근 한국이나 일본의 젊은 여자들의 자살률이 높아진 것만 봐도 이것은 결코 간과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스트레스가 지속되어서 수면 패턴, 식욕, 일상 등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느껴진다면 자신의 상태를 좀 더 관심있게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그럼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상황이 썩 좋지 않을 땐 그 상황 자체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19처럼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그럴 땐 안 좋은 뉴스를 계속 들여다 보고 있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에 집중해보세요. 영화 관람, 독서, 식물 가꾸기 등 잘 생각해보면 외출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기회에 기부 활동을 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보람된 일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자신과 남에게 작은 희망과 웃음을 선사해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소중한 기부금이 엉뚱한 곳에 가지 않도록 잘 알아본 뒤에 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관리 하면 우선 운동과 몸 관리가 떠오릅니다. 운동은 의외로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취향에 맞는 홈트 방송을 골라서 틀어놓고 딱 15분만 따라해보세요.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꾸준히 하다 보면 분명히 예전과는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요가나 명상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고, 외국어 공부를 해보는 등, 자신을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찾아서 해보세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은 팬데믹을 떠나 한 인간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 위기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은 결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니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정신이 힘든 상태가 되면 자신을 고립시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갑자기 살이 찌거나 빠졌거나, 또는 지속적인 불안감, 수면장애, 과호흡 등을 느끼고 있다면 혼자 고통받고 있지 마세요.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나중에 더욱 큰 문제가 올 수 있으니 정신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고려해 보세요.
그것이 힘들다면 친구나 가족 등 주위 사람들에게 감정을 털어놓아 보세요. 부담감을 내려두고 힘들어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취해보세요. 누군가와 꾸준히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다."라는 천종윤 씨젠 대표이사의 말씀이 문득 떠오릅니다. 사실 지금의 상황이 여러모로 굉장히 좌절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처음엔 그런 말들을 부정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한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사람은 희망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빠른 포기가 정신건강에 좋을 때도 있지만 벌써부터 희망을 버리고 우울감에 빠져 살 이유는 없습니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고 일단은 지금 챙길 수 있는 행복을 최대한 챙겨가면서 살도록 해봐야 할 것입니다.
인류는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도, 위기 피로감도 말이에요.